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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 왜 하나씩만 사 왔냐 나무라시면…
    금요선빵 2022. 3.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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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루아상과 바르셀로나

    재료:
    밀가루, 

    버터, 

    소금, 

    설탕, 

    이스트, 

    물, 

    계란

    가이드북을 사며 본격 여행 준비를 시작한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장소 중 가고 싶은 곳을 골라 나열한 다음 구글 지도를 열어 별표를 찍는다. 머무르는 기간과 동선을 고려해 최적의 여행 루트를 머릿속으로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비루한 여행자의 체력을 고려해 주요 방문지를 하루에 두 군데 정도로 분산시키고 전체적인 이동 경로에서 너무 많이 벗어난 곳은 과감히 포기한다. 휴식 시간도 계획에 넣는다. 아무리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했더라도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계획이 바뀌곤 하지만 이렇게 미리 생각을 해 두어야 마음이 편하다. 좀 피곤한 성격이다.


    바르셀로나 여행도 가이드북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곳곳에 남긴 건축물을 설명한 글에는 별표를 두 개씩, 그 외 가고 싶은 장소에는 별 하나, 꼭 가야 할 곳은 아니지만 시간이 남으면 한 번쯤 들려 볼만한 곳은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마지막으로 검색을 통해 방문 시간이나 휴무일 등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시내 적당한 위치에 숙소를 예약했다. 피곤하지만 이만큼 든든한 것이 없다.


    호프만 베이커리는 동그라미도 치지 않은 장소였다. 여행 막바지, 오전에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어디를 가보면 좋을까 하고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발견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맛있는 크루아상”을 판다는 소개 멘트에 마음이 동했다. 사실 크루아상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빵도 아니고 파리에서 빵집이 보이는 족족 사 먹었던 크루아상도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던 터라 반신반의하며 숙소를 나섰다. 늦게 가면 크루아상이 다 팔리고 없으니 가급적 문 여는 시간에 가라는 조언을 충실하게 따랐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가게 안에는 사람도 많지 않고 매대에 크루아상이 그득했다. 오리지널 크루아상 하나와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라는 마스카포네 크루아상 하나, 마지막으로 초콜릿이 들어가 달달한 빵 오 쇼콜라 하나를 골라 담았다. 몇 개 더 살까 하다가 말았다. 엄마는 크루아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결국 세 개를 내가 다 먹어야 할 텐데 그러기에는 양이 좀 많아 보였다. 크루아상은 버터 함량이 높아서 금방 질리기도 하고 말이다.


    숙소에 돌아와 빵 봉투를 열고 가위로 크루아상을 조금씩 자를 때까지만 해도 그럴 줄 알았다. 엄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빵 애호가인데 크루아상만큼은 나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엄마는 크루아상을 “빠다 (버터)가 많이 들었는지 니키(느끼)하고 밍밍한 빵”으로 정의하고 내가 파리에서 크루아상을 살 때마다 의문을 표한 바 있으며 이번에도 역시나 똑같은 빵을, 그것도 크루아상을 세 개나 사 왔다고 핀잔이 자자했다. 


    “만다꼬 이래 마이 사왔노!”
    “여기가 크루아상 맛집이래.”


    종류 별로 자른 크루아상 조각을 하나씩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느라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오리지널 크루아상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며 버터 풍미가 가득했다. 마스카포네 크루아상은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서 축제의 불꽃놀이가 한판 거하게 벌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빵 오 쇼콜라도 적당히 달면서 초콜릿과 버터 맛이 조화를 이루어서 좋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먹어본 크루아상 중 최고였다. 괜히 가이드북에 나오는 게 아니었다. 바로 그때였다. 


    “와 한 개씩만 사왔노!”


    아니 어머니… 크루아상 안 좋아한다면서요… 왜 하나씩만 사 왔냐 나무라시면 어찌 합니까… 저는 엄마는 맛만 보고 나머지는 다 제가 먹을 거라 생각했다고요…


    “크루아상 안 좋아 한다매!”
    “아니, 안 좋아하는데… 맛있네.”


    엄마가 멋쩍게 웃었다. 조금 모자란 듯 빵 세 개를 나누어 먹었다. 그녀가 크루아상을 좋아하지 않았던 건 정말 맛있는 크루아상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엄마는 크루아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크루아상은 참 맛있었다고 회고한다. 


    어디 크루아상뿐일까. 정말 맛있게 요리된 걸 먹어보지 못해 맛없는 음식으로 오해해버린 적이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고대한다. 65년 평생, 가금류를 입에도 대지 않은 엄마와 함께 치킨 다리를 뜯을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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