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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 스콘을 갈라 버터와 잼을 바르고 홍차를 우려 티파티를 해야겠어요
    금요선빵 2022. 4.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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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콘과 런던

    재료:
    밀가루,
    소금,
    버터,
    설탕,
    베이킹파우더,
    달걀,
    우유

    런던에서 보낸 열흘 거의 내내 종일 흐리거나 비가 왔다. 이제 조금 내리는 비는 그냥 맞고 만다는 런던 유학생 M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흐린 날씨에 비해 그리 춥지는 않아서 겨울임에도 두꺼운 패딩 점퍼 대신 코트를 입고 돌아다닐 수 있었고, 옷차림이 둔하지 않아 우산을 들어도 덜 거추장스러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영국 사람들은 겨울에도 코트만 입길래 역시 영국 멋쟁이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날씨가 받쳐주어 가능한 거였다. 방한 용품으로 완전무장 후 외출을 해도 겨울 칼바람과 입김이 엉겨 속눈썹에 고드름이 얼어붙는 우리나라 겨울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날도 아침부터 흐렸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뚫고 M은 학교로, 나는 런던 시내로 길을 나섰다. 가냘픈 체구와 정반대로 드넓은 마음을 가진 M은 런던으로 놀러 온 친구를 위해 열흘이나 침대를 내어 주었다. 여행에 필요한 앱과 정보를 챙겨주고 혹여 친구가 런던에서 미아가 될까 연구실에 있는 틈틈이 나를 챙겼다. 

    “잘 구경하고 있어? 지금 뭐해?”
    “창 밖을 보니까 해가 너무 좋아서 건물 밖으로 나와 걷는 중이야.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어.”
    “런던 사람 다 됐네.”

    오전 내내 흐리다 거짓말처럼 해가 났다. 잠깐 내리쬐는 햇살을 보니 마음이 무척 들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편인 데도 그랬다. 이런 날씨에 실내에 있는 건 날씨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해만 나면 윗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알 수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런던 시내를 걸었다. 

    어느덧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에 도착했다. 어두운 입구를 통과해 실내로 들어가 어마어마한 전시품을 마주하니 잠시 딴 세상으로 옮겨온 기분이 들었다.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를 돌아다니듯 박물관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밖에서 볼 땐 몰랐는데 박물관 안쪽은 붉은 벽돌 건물이었고 가운데 연못과 중정이 있었다. 중정 맞은편에는 카페가 있어 음료나 간단한 음식을 팔았다.

    시간이 애매해서인지 이곳 박물관이 관광객의 주요 코스에서 벗어나 있는지 카페 안에는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신 멋진 은발을 가진 사람들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천장에 줄지어 매달린 보름달 마냥 크고 둥근 조명이 이방인을 맞았다. 앨리스, 이제 티파티를 시작할 시간이란다.

    홍차와 스콘을 차려 두고 나홀로 티파티를 열었다. 평소라면 커피를 주문했겠지만 이곳 카페에서는 꼭 홍차와 스콘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스콘을 반으로 갈라 버터와 잼을 바르고 크게 한입을 먹었다. 그리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딱 상상했던 만큼 밀가루 맛, 버터 맛, 딸기 잼 맛이 났다. 그래도 고즈넉한 카페 분위 기가 좋아서 제법 오래 차를 마셨다. 미친 모자장수의 말장난도, 토끼의 호들갑도 없는 조용한 티파티였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박물관 카페와 스콘에 대해 M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페는 아름다웠지만 스콘은 그냥 그랬다고 아쉬움을 표하자 M은 자기가 좋아하는 학교 근처 카페에 함께 가보자고 했다. 그곳 스콘이 그렇게 맛있다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M이 좋아하는 카페도, 그곳의 스콘도 먹어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M도 런던을 떠나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 런던 카페에서 스콘과 홍차를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은 영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스콘은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 집에서 종종 굽곤 한다. 사는 것과 만드는 것의 차이가 크지 않아 만들고 난 후 보람이 큰 빵이다. 기본 재료에 레몬 제스트나 아몬드 가루, 녹차 가루 등을 넣어 여러 가지 맛을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버터인 것 같다. 풍미 좋은 버터를 담뿍 넣어 만든 스콘은 특히 맛이 풍부해진다. 물론 직접 베이킹을 하면 그 양에 놀라서 선뜻 버터를 정량만큼 넣는 일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 기껏 버터 양을 줄여 굽고는 먹을 때 다시 스콘 가득 버터를 발라 먹으면 이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한데 원래 사는 게 그런 것 아니겠나. 

    언젠가 M과 함께 갓 구운 스콘을 바구니 가득 담아 들고 소풍을 가야겠다. 돗자리와 홍차 세트를 함께 챙겨 들고 토끼굴을 찾으러 가야지. 어디선가 회중시계를 든 토끼가 바삐 달려온다면 그의 손에서 시계를 뺏어 들고는 함께 차를 마셔야겠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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