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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 강건한 브레첼
    금요선빵 2022. 4.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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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첼과 독일

    재료:
    밀가루, 

    소금, 

    버터, 

    드라이이스트, 

    물, 

    표면을 갈색으로 만들기 위한 베이킹소다

    튤립 한 다발을 샀다. 거리 곳곳에 튤립이 피어 있길래 집 안에도 그를 들이고 싶었다. 봄 한철 잠깐 동안만 튤립을 볼 수 있을 거라 짐작했다. 튤립은 언제까지 나오냐고 꽃집 사장님께 물었더니 일년 내내라는 답변을 들었다. 의외의 답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니 사장님이 설명을 덧붙였다. 수입 튤립이 있기 때문에 튤립 자체는 언제든 살 수 있고 봄에는 국내에서도 튤립이 생산되기 때문에 더 좋은 가격에 접할 수 있단다. 튤립은 원래 가격대가 있는 꽃인데 수입 꽃은 당연하게도 가격이 더 올라갈 테니까 싱싱하고 비교적 저렴하게 튤립을 즐길 수 있는 시기는 요즘뿐이겠다.

     
    한껏 물이 올라 토실한 튤립 몽우리가 꼭 브레첼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가루를 길게 밀어 숫자 8 모양으로 꼬아 만든 독일 전통 빵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사람들을 따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프레첼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입에 쏙쏙 들어가는 크기의 미니 프레첼 과자가 더 유명한 것 같다. 나도 미니 프레첼로 브레첼을 처음 접했다. 한 맥주 가게에서 기본 안주로 프레첼을 내주었는데 짭조름하게 간이 되어 있어 물이 키고 그래서 술을 술술 잘 마실 수 있어 안주로 제격이었겠건만 그때는 뭘 몰라서 맥주를 앞에 두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서인지 그날 마신 술맛도, 다른 안주도 기억나지 않지만 미니 프레첼 맛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찌 보면 튤립 꽃봉오리를, 어찌 보면 하트를 닮은 작고 사랑스러운 모양새도 좋았다. 


    독일에서 브레첼을 처음 보고 일년 내내 튤립이 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게 브레첼이라고? 그것은 분명 내가 알던 브레첼과 같은 모양이긴 했으나 크기가 월등히 컸다. 그동안 술집에서 먹었던 안주는 앙증맞고 귀여운 크기였는데 독일의 브레첼은 내가 손가락을 쫙 펼쳤을 때의 손 크기와 맞먹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과자가 아니고 빵이었다. 반으로 쪼개면 탁 하고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뿌지직하고 뜯어졌다. 아무도 속인 사람이 없었지만 괜히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아무렴 어때. 맛만 있으면 되지. 브레첼 표면은 나무줄기 같은 짙은 갈색에다 굵은소금이 알알이 뿌려져 있어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한입 앙 하고 뜯어먹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브레첼은 생각 외로 단단해서 구강의 악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으면 입 안으로 그 조각을 떼어 오는 일이 불가능했다. 앞니로 브레첼의 링 부분을 단단히 물고 팔뚝으로 토크를 걸어 힘껏 뜯어 내야 비로소 한 입을 먹을 수 있었다. 독일 현지의 브레첼을 먹기 위해서는 차력 쇼 한판을 기꺼이 벌일 궐기가 필요했다. 브레첼 속은 따로 간이 되어 있지 않아 밍밍한 맛이 났기 때문에 겉표면의 소금이 입안에서 잘 배합되도록 혀를 부지런히 놀리는 기술도 요했다. 이렇게 열심히 한 마디 크기로 떼어낸 브레첼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니 아직 내 손에는 처음 모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브레첼이 위풍 당당히도 남아 있었다. 


    맛이 없었나 하면 그렇지는 않아서 심심하게 담백하여 자꾸만 먹고 싶은 맛이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먹고 싶은데 먹으려면 힘을 써야 했다. 먹는 동시에 에너지가 소모되는 신박한 경험이었다. 반쯤 먹고 나니 마른오징어 한 마리를 씹은 것처럼 턱관절이 뻐근해 왔다. 이렇게 질긴 빵을 일상적으로 먹는 다니, 독일 사람들은 틀림없이 모두들 단단한 하관을 가졌을 테다. 


    몇 년 뒤 한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 브레첼을 만났다. 사람을 유혹하는 향기의 정도가 델리만쥬의 그것을 가히 능가하였기에 발원지를 추적해가니 브레첼을 팔고 있었다. 다시 한번 사시사철 튤립이 난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독일에서 먹었던 브레첼에는 별다른 향기가 나지 않았는데 이건 또 어떤 변종인가 호기심이 일었다. 미국 브랜드인지 브레첼 대신 프레즐이라는 이름을 썼고 튤립 모양 말고 먹기 좋게 일자형으로 생긴 것도 있었다. 옛 생각에 힘껏 프레즐을 베어 물었다. 스르륵 부드럽게 이가 빵 속살을 파고들었다. 맛있었는데 어쩐지 맥이 풀렸다. 구강 악력을 시험하고 말았던 그날의 강건했던 브레첼이 조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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