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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알람 6. 우리가 잊어버린 세계금요알람 2021. 8. 24. 20:04
#우리들 #프리다의 그해 여름 #플로리다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지난 한주 어떠셨나요? 언제나처럼 평안하셨기를 바랍니다. 😊
모처럼의 휴일이었던 어린이 날을 어떻게 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마치 쉼표인 양 일주일의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한 덕에 길게 연차를 쓰기도, 바쁜 한주 중에 잠깐 숨을 고르기도 괜찮았지요. 저는 눈 몇 번 감았다 떴더니 하루가 다 지나갔더라고요. 느긋하게 쉬면서 영화도 보고 당신께 보낼 편지도 쓰려고 했던 계획은 물거품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 아득해지는 만큼 어린이를 이해하는 일도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잊어버린 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을 포착해 영화로 만들어 낸 감독들이 있습니다. 함께, 만나볼까요?
우리들 (2015)
흔히들 하는 말 중에 "애가 뭘 알겠어?"와 "애들이 걱정할 게 뭐 있어?"가 있는데 둘 다 아닙니다. 애들도 다 알고요, 어른만큼의 걱정도 있습니다. 다만 어른들이 모르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을 뿐이죠.
윤가은 감독은 이 두 가지 질문에 작정하고 반기를 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상황을 파악하는 기민함과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싸움을 베이면 피가 날 정도로 날카롭게 묘사합니다.
때로는 아이가 어른보다 더 잔인합니다. 숨기거나 에두르는 법이 없거든요. 영화는 체육 시간에 피구 팀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대표 두명이 자기가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을 한 명씩 고릅니다. 영화의 주인공 선(최수인 분)은 마지막까지 선택되지 못해요. 어렸을 땐 몰랐는데 지금 스크린으로 보니 이런 방식으로 팀을 가르는 건 숨이 막힐 정도로 잔인한 거였습니다. 이 짧은 장면만으로도 윤가은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가치는 무한합니다.
감독 : 윤가은
러닝타임 : 1시간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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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의 그해 여름 (2017)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우리나라에서만 하는 놀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륙의 반대편 끝, 스페인에서도 아이들이 똑같은 놀이를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외우는 문장은 다르겠지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세계 어디를 가든 비슷한가 봅니다.
프리다(라이아 아르티가스 분)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바르셀로나에서 시골 외삼촌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홀로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지내게 된 여섯 살 소녀 프리다. 카메라는 집요할 정도로 프리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관찰합니다. 덕분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프리다와 같은 위치에서 제한적인 정보를 얻고 상황을 파악하게 되고, 조금 더 깊이 프리다의 감정을 이해하고 느끼게 됩니다.
프리다도 프리다지만, 성질이 날 법도 한데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는 프리다의 외숙모에게 저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보살이 따로 없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노력해야겠어요.
감독 : 카를라 시몬
러닝타임 : 1시간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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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2017)
창문을 열어 놓으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찌나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지 저러다 목이 쉬지는 않을까 슬며시 걱정이 들 정도예요. 하지만 아이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어울려 놉니다.
무니(부르클린 프린스 분)와 친구들도 그래요. 굳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주고받는 걸 보면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인 것 같습니다. 땀을 빨빨 흘리며 주차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를 짓다가도 이내 위화감이 드는 건, 무니가 살고 있는 '매직캐슬'은 '캐슬'이 아니고 '모텔'이며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플로리다 주에서 시행한 홈리스 보조금 지원 정책이라는 걸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챌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는 무니의 시선이 중심이지만 저는 무니 보다는 모텔 관리인 바비(윌렘 데포 분)에 더 이입이 되더라고요. 등장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배우 윌렘 데포이나, 이 영화에서는 중심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바비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는 건 제가 어쩔 수 없이 어른이기 때문일까요.
감독 : 션 베이커
러닝타임 : 1시간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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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면 좋을 그림
Carnation, Lily, Lily, Rose (1885-6)
John Singer Sargent런던의 상징 중 하나인 빅벤에서 템즈강을 끼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을 만날 수 있습니다. 테이트 재단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1500년대에서 현재까지 이르는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요. 보통은 '테이트 모던'을 많이 방문하던데 이곳이 관광지가 모여 있는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그런가 봅니다.
존 싱어 사전트의 그림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는 테이트 브리튼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쓰입니다. 어린아이 둘이 정원에서 종이 등을 들고 노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작은 그림 같지만 실제로는 가로 세로 2미터에 가까운 큰 그림이에요. 시간이 멈춘 듯 등 속의 불빛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과 보고 있노라면 왜 이 그림을 미술관의 대표작으로 뽑았는지 단번에 이해가 갑니다. 언젠가 런던에 가게 된다면 테이트 브리튼과 이 그림을 떠올려 주세요. 😉
Tate에서 더보기
모두가 겪었지만 모두가 기억하지는 못하는 이야기가 바로 어린이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주말 영화를 통해 우리가 잊어버린 그 영롱한 세계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Q
뉴스레터 발행일: 2021.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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