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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요예찬 17. 함께 다정히 늙어가길
    금요예찬 2021. 12.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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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냥한 구독자님께,

    안녕하세요. 이번 시즌 마지막 『금요예찬』을 쓰고 있는 큐레이터 Q입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2021년도 벌써 마지막 주입니다. 9월에 시작한 『금요예찬』은 오늘 편지까지 포함하면 모두 열일곱 편이 됩니다. 처음 시작할 때 매주 『금요알람』 외에 추가로 글을 쓸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는데 휴재나 지각없이 시즌을 마무리해 마음이 놓입니다. 

    고백하자면 월요일 저녁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한 주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한번 쉬고 나면 영영 쉬고 싶어 질까 두려워 어찌어찌 글 한 편을 썼습니다. 예약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면 무사히 마감을 했다는 안도감과 글이라 부르기 민망한 무언가를 생산했다는 부끄러움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다음번 글은 좀 더 오랜 시간 공들여 써야겠다고 매번 다짐했습니다만 매번 미루다 월요일 밤이 되어서야 책상 앞에 앉아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쓰고 있지 않아도 글을 어떻게 쓸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고, 민망한 마음에 변명을 보탭니다. 질이 들쭉날쭉하는 저의 글을 읽어주어 감사합니다. 

    읽을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구독자님의 귀한 시간을 들여서 저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답장도, 전해주신 감상도, 오탈자 제보도 모두 소중히 읽었습니다. 구독자님 덕분에 빼먹지 않고 끝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상냥하고 다정한 구독자가 있어 제가 참으로 복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글을 다시 훑어보니 쓸데없이 무게를 잡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분명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유쾌한 글을 쓰려했는데, 매번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곧잘 진지해지고 마는 천성 탓인지 부족한 글재주 탓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쓰고 싶은 글을 쓰려면 부단히 노력해야겠습니다. 행여나 『금요예찬』을 읽다 한 번이라도 피식 웃으셨다면 원작자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는 엄청난 내공을 가졌다고 자부해도 되겠습니다. 

    끝으로 사사로운 이야기를 더합니다. 두어 달 전쯤 왼쪽 눈에 쌍꺼풀이 생겼습니다. 저는 본디 외꺼풀 눈인데 많이 피곤하거나 앓고 나면 쌍꺼풀이 잠시 생겼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며칠 지나면 없어질 줄 알았습니다. 갑자기 생긴 주름에 눈을 뜰 때마다 어색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쌍꺼풀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오른쪽 눈에도 생겼습니다. 속에 말려들어간 쌍꺼풀이라 남이 보기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어서 저만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일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입가에도 주름이 생겼습니다. 진하지는 않지만 입꼬리에 힘을 주거나 웃으면 선명하게 주름이 보입니다. 나이를 먹어 피부에 전체적으로 지방이 빠지고 탄력이 줄어들어 여기저기 주름이 생기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거울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보조개라고 우겨봅니다. 

    피부과에 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을 제 발로 찾고 싶지 않아 관두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고르고 두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하나, 흰머리를 가리려고 염색을 하지 않는다. 둘, 나이를 가리려고 피부 시술을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사뭇 비장하게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 조금 무안했습니다. 역시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좀 더 제멋대로 살아도 되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평소 바르던 기초 화장품의 사용량을 두 배로 늘렸습니다. 철푸덕, 철푸덕. 네, 저는 나약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약한 저는 상냥한 구독자 구독자님과 함께 다정히 늙어가길 기대합니다. 

    오늘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큐레이터, Q  

     

    <A Snowy Morn>, Grandma Moses, 1954, Oil and glitter on board, 31.1 by 45.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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