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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알람 35. 크리스마스엔 옛날 로맨틱 코미디금요알람 2021. 12. 24. 08:00
#당신이 잠든 사이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귀여운 여인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독자 님께 편지를 보내려니 마음이 몽실몽실한 게 묘하게 설레네요. 지난 주말에는 눈이 펑펑 내려 온 동네 아이들이 썰매를 끌고 나왔던데 이번 주말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눈이 올까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이번 주는 로맨틱 코미디 세 편을 골랐습니다. 파자마 차림으로 뒹굴거리며 보기 좋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만들어진 조금 오래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예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 (1995)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 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어요. 크리스마스트리로 쓰려고 루시(산드라 블록)가 엄청나게 큰 나무를 밧줄로 끌어올리다 그만 떨어뜨리고 마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냥 전나무나 살걸"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저렇게 큰 나무가 전나무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지'하고 한참 궁금했더랍니다.
루시는 기차 매표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같은 시간 대에 기차를 이용하는 한 남자를 짝사랑하는 중이죠. 그가 자신이 꿈에 그리던 백마 탄 왕자(Prince Charming) 일 거라고, 언젠가 그에게 말을 건네거 사랑에 빠질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싱글이라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떠밀리듯 매표소에서 일하게 된 루시. 그날 아침, 그녀의 짝사랑 남자가 철로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그녀는 용감하게 그 남자를 구해냅니다. 그러고 어쩌다 보니, 남자의 가족들에게 약혼녀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요. 그녀는 이제 겨우 그 남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뿐인데 말이에요.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그녀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요즘은 고화질로 영상을 촬영하니까 화면이 무척 선명하잖아요. 하지만 저때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을 때라 필름 특유의 노이즈와 뽀얀 느낌이 화면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영화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 잘 살려주는 것 같아요. 영화 오프닝에 쓰인 나탈리 콜(Natalie Cole)의 노래 "This will be"도 무척이나 달달하네요.
감독 : 존 터틀타웁
러닝타임 : 1시간 43분
Stream on Disney+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해묵은, 그러나 영원히 쉽게 결론 나지 않을 질문. 해리(빌리 크리스탈 분)와 샐리(멕 라이언 분)는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함께 차를 몰고 가며 이 질문을 두고 한참 동안 언쟁을 벌입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해리의 말투가 어찌나 얄밉던지요. 저라면 그를 고속도로에 버리고 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아도 그 생각이 드네요. 샐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녀는 음식 메뉴 하나를 허투루 주문하는 법이 없고 자기가 먹은 음식 가격을 연필로 적어가며 꼼꼼하게 계산해서 팁을 내는 사람이거든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니까 당연히는 둘은 결국 사랑에 빠지겠죠. 이샴 존스(Isham Jones)와 거스 칸(Gus Kahn)의 노래 "It had to be you"가 영화의 오프닝에 쓰인 것처럼요. 그렇지만 서로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둘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그 과정을 함께하는 게 이 영화의 재미일 거예요. 자신은 어느 여자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는 해리를 두고 샐리가 식당에서 가짜 오르가슴을 연기하는 장면이 유명했는데, 이 영화도 벌써 삼십 년 전 영화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샐리(멕 라이언)가 자기 키보다 훌쩍 큰 나무를 땅에 질질 끌고 집으로 가는 장면 때문에 전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 이 영화가 종종 생각나곤 합니다. 십 년 넘게 이어지는 해리와 샐리의 인연과 그들의 짧은 인연 사이사이에 삽입된 노부부의 인터뷰 장면도 흥미로워요.
감독 : 롭 라이너
러닝타임 : 1시간 36분
Stream on Watcha귀여운 여인 (1990)
영화 『귀여운 여인』은 성공한 사업가 에드워드(리차드 기어 분)와 콜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 분)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안이한 설정으로 지금도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하긴 어렵겠지만, 그시절 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함박웃음은 그 모든 걸 그냥 모른 척 속아 넘어가게 만드네요.
처음 시나리오는 무척이나 어둡고 우울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는 부실한 기업을 인수해 조각조각 낸 후 하나씩 되팔면서 이윤을 남기는 인수합병 전문가를, 비비안은 그 과정에서 가정이 파괴되어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거리에 나앉게 된 약자들을 대표하는데 그 둘의 만남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이면을 담으려 했다고요. 이후 여러 번의 시나리오 수정을 거쳐 지금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되었다네요.
빰, 빰, 하는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의 노래 "Pretty Woman"이 흐르고 비비안이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비벌리힐즈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워낙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되어서 제 나이 대만 해도 영화는 몰라도 이 장면은 다 알았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감독 : 게리 마샬
러닝타임 : 1시간 59분
Stream on Disney+
덧붙이는 이야기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12명의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징글벨
12 Cellists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소속 첼리스트가 모여 만든 연주 그룹입니다.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캐럴 징글벨을 연주했습니다. 늘 진지한 얼굴로 무대에서 교향곡을 연주하던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유쾌하게 캐럴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색다르네요.
첼로 연주에 맞게 편곡한 징글벨도 아름답고, 경쾌하게 핸드벨을 흔드는 첼리스트도 유쾌하네요. 12명의 첼리스트가 들려주는 징글벨과 함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보아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미덕은 파자마 차림으로 팝콘을 먹으며 마음 푹 놓고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마냥 웃고 넘어가기 힘든 지점도 분명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편안한 느낌의 영화가 드물어졌는데요, 그래서 더욱 로맨틱 코미디는 시대에 맞게 매번 다시 만들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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