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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요예찬 10. 탕웨이와 만추, 그리고 귀걸이
    금요예찬 2021. 11.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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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에서 액세서리 코너를 구경하다 귀걸이 한 쌍을 발견했다. 소라와 조개, 진주 모양으로 장식된 귀걸이는 얼핏 보면 장난감 같지만 다시 보면 세부 묘사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흔히 볼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프랑스에서 수공예사가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들었다는 그 귀걸이는 특이한 모양만큼이나 가격도 특별했다.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비싸지는 않지만 그 돈을 들여서 사는 게 과연 맞을까 하며 멈칫하게 되는 어정쩡한 액수. 잠시 고민하다 이럴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둘러보고 올게요를 내밀고 코너를 빠져나왔다. 동행했던 친구가 백화점 할인 카드가 있다며 말했다.

     

    사지 그래? 예쁘던데.”

    예쁘긴 한데, 그 돈 주고 사긴 좀 그래. 금도 아닌데…”

    하긴그렇기는 해.”

     

    금도 아닌 액세서리에 그 돈을 쓰기는 아깝다는 가성비에 기초한 논리를 나는 이기지 못했다. 애초에 사치품에 가성비를 따지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못내 아쉬워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터넷을 뒤졌다. 브랜드의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고 세일 찬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여기저기를 찾아보며 휴일 오전을 보냈다. 엄마로부터 뭐 하느라 노트북 모니터를 아침부터 뚫어지게 보고 있느냐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마음을 접었다. 아무래도 이건 사지 못하겠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때도 마음을 조금 더 쓰면 샀을 수도 있을, 애매하게 높은 가격을 넘지 못하고 결국 사지 못했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를 보고 나서였으니 십 년도 전에 일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학생이라 주머니 사정이 가볍다는 핑계도 사라진 마당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는 어쩜 이리도 한결같을까.

     

    영화는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도시 시애틀을 배경으로 엄마의 부음으로 교도소에서 고향 시애틀로 외출하는 애나(탕웨이 분)를 좇는다. 애나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시애틀 거리를 돌아다니다 한 빈티지 가게에 들어가 원피스와 외투, 귀걸이 한 쌍을 산다. 오랫동안 착용하지 않아 막혀버린 귀의 구멍을 귀걸이로 억지로 뚫는데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그 귀걸이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터키색 비즈가 알알이 매달린 물방울 모양의 귀걸이였다.

     

    집요하게 인터넷을 뒤졌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소품은 그걸 홍보 요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욕망과 집념의 검색 후에도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없었던 걸 보면 아마 미술팀이 제작하거나 현지 빈티지 숍 등에서 공수한 물건이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마음에 묻어두고 지내길 며칠. 우연히 백화점 액세서리 코너에서 영화에서 본 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귀걸이를 발견했다. 이건 운명이야! 사야 해! 마음 속은 브라질 삼바 축제 퍼레이드처럼 날뛰었지만 겉으로는 짐짓 점잖을 떨며 가격을 물었다. 생각보다 높았다. 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라는 물음표가 떠오르는 애매한 가격. 그래서 그때도 나는 둘러보고 올게요카드를 쓰고 백화점을 나섰다.

     

    엉뚱한 접근이었지만 덕분에 『만추』는 개인적으로 더욱 애틋한 영화로 남았다. 가질 수도 있었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떠올릴 때 드는 애잔한 마음. 이 마음이 어쩌면 『만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애나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분노하면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마주한다. 그 모든 일을 겪은 후 애나는 홀로 탁자에 앉아 비로소 웃는다.

     

    『만추』는 제목과는 반대되게 꽃이 아직 피기도 전인 이른 봄에 개봉했다. 기묘하게 어긋났던 개봉일 덕분에 나는 『만추』를 봄이 오면 한번, 늦은 가을이면 한번, 이렇게 일 년에 두 번 떠올린다. 다음 봄이 오면 나도 애나처럼 미소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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