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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요알람 26. 드니 빌뇌브의 황량함
    금요알람 2021. 10. 22. 08:00

    #블레이드 러너 2049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프리즈너스

    다정한 구독자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지난 화요일 영화관에 다녀왔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듄』이 개봉했기 때문이죠. 백만 년 만에 간 영화관은 낯설고 친숙했어요. 그 사이 거의 두 배는 된 것 같은 티켓 가격에 놀라기도 했고요. 하지만, 커다란 스크린과 웅장한 소리, 영화 이외에 다른 자극이 없는 적절한 어둠은 여전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아야 하는 훌륭한 이유가 되어주었습니다.

    『듄』은 오래 기다리고 기대했던 만큼 아름답고 장엄했습니다. 러닝타임이 길어서 지루할까 걱정했는데 감독이 욕심을 부려서 더 길게 만들었어도 괜찮았겠다 싶어요.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가 러닝타임이 세 시간이었잖아요. 영화가 흥행해서 2편도, 감독판도 나오길 기원합니다. 제발...

    그래서, 이번 주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로 꾸려보았습니다. 빌뇌브 감독은 느린 호흡으로 영화를 찍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그가 만든 이미지는 어딘가 쓸쓸하고 황량합니다. 실제로 사막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런 황량함이 더욱 짙게 묻어났던 영화를 소개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

    지난번 디스토피아편에서 이 영화를 쓸까 말까 하다 아껴두었는데 그러길 잘했습니다. 그게 다 드니 빌뇌브 특집을 위한 큰 그림이었어요. 빌뇌브 감독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받아 삼십 년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그렸습니다. 제목에 "2049"라는 년도가 붙어있는 건 그 때문이죠. 배우 해리슨 포드가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로 등장해 예전 블레이드 러너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반가움을 선사했습니다. 영화도 현실과 함께 삼십 년이 흐른 듯한 느낌을 준 건 덤이었고요.

    처음 레플리컨트, 즉 복제 인간을 만든 타이렐 사는 레플리컨트가 계속 반란을 일으키자 생산을 중단하고 파산했습니다.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 분)는 타이렐 사의 기술을 인수해 순종적인 신형 레플리컨트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지요. 구형 레플리컨트 중 수명 제한이 없었던 모델이 일부 살아남았고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여전히 블레이드 러너가 활동합니다. 예전과 달라진 건 블레이드 러너로 신형 레플리컨트를 고용한 점입니다. 그리고 K(라이언 고슬링 분)는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모래가 짙게 섞인 주황색 안갯속을 K가 걸어 나오던 장면이었습니다. K는 임무를 수행하다 출산의 흔적이 있는 레플리컨트 유해를 발견하고 혼란에 빠지죠. 정말 레플리컨트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단서를 찾기 위해 길을 헤매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무척이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빌뇌브 감독이 사막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감독 : 드니 빌뇌브
    러닝타임 : 2시간 44분
    Stream on Watcha & Neflix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2015)

    시카리오(sicario)는 스페인어로 암살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남미 마약 카르텔를 이야기할 때 마약상을 뜻하는 나르코스(narcos)와 쌍으로 언급되곤 하는데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수장 파블로 에스코바르 체포 작전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를 보셨다면 아마 친숙할거에요. 시간적 배경은 드라마가 영화보다 앞섭니다.

    영화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벌어진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을 줄기로 흘러갑니다.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분)와 CIA 소속의 작전 총 책임자 맷(조슈 브롤린 분), 작전 컨설턴트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분)이 함께 멕시코 소노라 카르텔을 퇴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하지만, 케이트는 유능한 FBI 요원으로 작전에 자원했지만 자신이 들러리로 작전에 투입되었다는 걸 알게 되죠. 맷은 자신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고 컨설턴트라는 알레한드로도 누구 편인지 무엇이 목적인지 모를 의문투성이입니다.

    총성이 끊이지 않는 국경지대에서 동료조차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는 케이트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객을 혼돈 속에 꽉 붙잡아 둡니다. 빌뇌브 감독 특유의 느린 호흡은 공기를 흔드는 총성에도 서늘함을 배어들게 만들죠. FBI와 CIA의 미묘한 관계, 뿌리 깊은 마약 카르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영화를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감독 : 드니 빌뇌브
    러닝타임 : 2시간 1분
    Stream on Watcha & Neflix

    프리즈너스 (2013)

    추수감사절, 켈러 도버(휴 잭맨 분)는 아이들과 함께 이웃인 버치네 집을 방문합니다. 사냥으로 잡은 사슴을 함께 요리해 먹고 즐거운 휴일을 보내던 중, 도버네 집으로 간 줄 알았던 두 부부의 막내딸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평화롭던 휴일이 공포의 시간으로 변하는 건 한 순간이었죠. 한편, 명절에 홀로 식당에서 밥을 먹던 형사 로키(제이크 질렌할 분)는 아이들의 실종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하고 유력한 용의자를 잡지만 증거가 없어 풀어주고 말죠. 그리고 두 남자는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분명 유괴범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숨김없이 쏟아붓습니다. 반면 형사는 그 남자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주아주 차갑고 냉철하게 사건을 파고들죠. 영화 내내 얼음과 불을 오가는 두 배우의 에너지가 굉장합니다. 특히 시나리오를 고르는 제이크 질렌할의 안목은 정말이지, 매번 놀라워요.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도통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어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놓치지 못했습니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이면 누가 죄인인지, 누구를 죄인이라 할 수 있을지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물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 : 드니 빌뇌브
    러닝타임 : 2시간 33분
    Stream on Watcha & Neflix


    덧붙이는 이야기

    "시네마토그래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우리말로는 "촬영 감독"으로 번역하는데 영화 촬영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카메라나 조명을 다루는 일부터 시작해서 신을 어떻게 촬영할지 같은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나 분위기, 장면의 흐름 등을 감독하지요. 감독이 상상한 장면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자신만의 미학을 발휘해 감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해서 촬영 감독을 "아티스트"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한 세 영화 모두 로저 디킨스가 촬영 감독을 맡았는데요, 그동안 그가 맡았던 영화의 면면이 쟁쟁합니다. 『쇼생크 탈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007 스카이폴』, 『1917』까지, 정말 엄청나죠? 하지만 상복이 없기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쌍벽을 이룹니다. 무려 열세 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어요. 그가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았을 때 토론토 국제 영화제 (TIFF, 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재미있는 헌정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그동안 맞붙었던 영화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영상을 보며 확인해 보시죠.


    끝으로 영화 에 대한 감상을 짧게 남깁니다. 저는 두 시간 반이 짧게 느껴질 만큼 황홀했어요(감독판 나와랏!). 딱 하나 아쉬운 게 음악이었습니다. 한스 짐머는 이번 영화에서는 음향 효과에 가까운 음악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데 집중한 것 같아요. 시종일관 "우우웅, 와아앙, 웨에엥"으로 이어지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은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흥얼거릴 멜로디가 없어 조금 섭섭했습니다.

    최근에 존 윌리엄스가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하며 자신의 영화음악만으로 두 시간 넘는 콘서트를 열었던 게 떠올라서 더 그렇게 느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그 멜로디가 들리면 영화를 보았던 기억 속으로 순식간에 빠져들고 말잖아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듄 OST를 반복해서 듣고 있는 요즘입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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