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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요알람 10. 빛나는 시작 (feat. Dogs)
    금요알람 2021. 8. 26. 17:47

    #플란다스의 개 #아모레스 페로스 #저수지의 개들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이렇게 또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기억하시나요? 공부나 일, 어쩌면 사랑도 좋겠네요. 새로움에 설레고 다가올 일을 몰라 두려우면서도 거침없이 순수할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이 바로 시작의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습니다. 제목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영화를 몇 편이나 만든 영화감독들도 말이지요. 그리고 여기, 시작부터 눈부셨던 감독들의 데뷔작이 있습니다.


    플란다스의 개 (2000)

    "야, 개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라는 동영상, 기억하시나요? 온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한 남자의 절규. 전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보고 불경하게도(!) 이 영상을 떠올렸습니다. 

     

    영화는 불안하고 다소 신경질적인 개 짖는 소리로 시작합니다.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며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고윤주(이성재 분). 대학 시간 강사로 이번 정식 교수 임용에도 보기 좋게 떨어졌죠. 통화 내용을 듣자 하니 임용권을 움켜쥔 학장의 마음에 들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밖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가 그의 신경을 잔뜩 긁어놓네요. 그러다 우연히 그는 아마도 그 소리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복도에서 마주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아파트 공동 지하실에 감금시켜 버리는데, 이 행동이 영화의 모든 사건을 촉발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평범한 일상을 신기할 정도로 세밀하게 스크린으로 옮겨 담습니다. 큰 봉투 한가득 쓰레기를 가져가서 그 앞에서 다시 분리해 버리는 아파트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의 풍경이라던가 장당 얼마를 내고 복사를 해주던 문방구를 보면 순식간에 나의 경험을 겹쳐 보게 되지요. 

     

    저에게 누군가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하나만 꼽으라면 전 주저없이 이 영화를 고를거에요. 정말이지, 영화 포스터 빼고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감독 : 봉준호

    러닝타임 : 1시간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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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레스 페로스 (2000) 

    영화 "레버넌트"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라는 감탄사를 외쳤습니다. 할리우드의 염원이 모여 곰 대신 디카프리오가 오스카를 받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죠. 반면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영화 "버드맨"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화제가 된 느낌입니다.

     

    멕시코 출신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개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제목 "아모레스 페로스"는 스페인어로 "개들의 사랑"이라는 뜻이에요. 투견으로 한몫 크게 벌어 고향을 떠나려는 옥타비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서로 교차하고 또 어긋납니다. 

     

    가끔 무리하게 이야기를 엮느라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옴니버스 영화도 있는데 이냐리투 감독은 그런 것 따윈 가볍게 비웃어 넘깁니다.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로도요. 아니, 오히려 데뷔작이기 때문에 날것의 생생함을 영화 내내 강렬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러닝타임 : 2시간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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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의 개들 (1992)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독특한 오프닝 시퀀스를 자신의 영화에 시그니처로 사용합니다. 투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큼지막한 글씨로 배우와 감독의 이름을 띄우고 그동안 극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쓰는 건 마치 고전 영화의 오프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죠.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은 조금 다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자신이 직접 배우로 등장해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에 대해 이야기하죠.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소위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인가 싶다가도 점점 대화에 빠져들고 맙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이 식당을 나서면 경쾌한 배경 음악과 함께 배우의 이름이 화면을 채우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됩니다. 제목이 나오고, 잠깐의 암전 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죠. 쿠엔틴 타란티노 답게, 피칠갑한 남자 둘이 차를 몰고 어딘가로 도망가는 장면으로 말입니다. 

     

    누군가 "연예인 걱정만큼 쓸데없는 걱정 없다"라는 말을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 재미없게 만들 걱정만큼 쓸데없는 걱정 없다"라고 바꾸어 놓은 걸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럼요. 괜한 걱정이 아닐 수 없죠. 감독은 끝내주는 영화만큼 끝내주는 선곡 센스를 자랑하는데요, 언젠가 그의 영화와 삽입곡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누고 싶네요.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러닝타임 : 1시간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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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하면 좋을 글

    민음사 잡지, 한편

    민음사에서 인문학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거, 아시나요? 일 년에 네 번, 각 권마다 한 가지 주제어를 두고 십여 편의 글을 담습니다. 그동안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을 다루었고 이번 호는 "일"이 주제네요.

     

    종이 잡지를 구독하지 않아도 민음사에 뉴스레터를 신청하면 일부 글을 맛보기로 읽어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이 뉴스레터를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제목은 "일하면서 자아실현한다는 거짓말".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감독들은 과연 일하면서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그들도 밥벌이의 고단함에 몸서리치는 날이 있을까요? 아니 그보다 전에, 영화를 만드는 일은 회사를 다니는 일과 같을까요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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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은 "공동경비구역 JSA"가 아니고 "달은... 해가 꾸는 꿈"입니다. 제목이 익숙하지 않은 건 흥행도, 작품성도 그저 그랬기 때문이겠죠.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지만 모두가 빛나는 시작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실망 말아요. 우리는 그저, 우리의 발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갈 뿐입니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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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레터 발행일: 2021.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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