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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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찬9. F55 포레스트, 영창 피아노금요예찬 2021. 11. 2. 08:00
금요알람 구독하기 📬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가 갑자기 요즘 피아노를 한 대 사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궁금해져서 검색해보았다. 피아노는 모양에 따라 크게 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로 나누는데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뚜껑이 열리는 피아노가 그랜드 피아노이고 피아노 학원 연습실에서 흔히 보는 세로로 길쭉한 피아노가 업라이트 피아노다. 그랜드 피아노는 1억이 훌쩍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었기 때문에 애초에 가격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업라이트 피아노는 삼백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 가격은 생각을 훨씬 웃돌았다. 국내 피아노 브랜드의 대명사인 영창과 삼익, 일본의 대중적인 악기 브랜드인 야마하에서 생산하는 업라이트 피아노는 오백만 원 전후였다. 물론 천만 원이 넘어가는 모델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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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찬 8.『듄』이 잘되면 좋겠습니다금요예찬 2021. 10. 26. 08:00
금요알람 구독하기 📬 한 영화의 성공을 이토록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던가. 요즘 나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신작 『듄』이 손익분기점을 넘겨 무사히 2편이 제작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아름다운 영상과 느린 호흡, 장엄한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듄』은 새로운 SF 시리즈의 시작을 황홀하게 선포했는데 그 면면이 감독의 전작 『블레이드 러너 2049』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고,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온갖 매체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내가 본 영화가 박스오피스 몇 위 인지, 지금까지 누적 관객 수가 몇 명인지 관심 있게 들여다본 적이 없는데 요 며칠 간은 매일 이 둘을 확인하고 있다. 더구나 다음 주에는 마블 스튜디오의 새로운 시리즈물 『이터널스』가 개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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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찬 7. 삶은 감자를 먹는 일금요예찬 2021. 10. 19. 07:00
금요알람 구독하기 📬 *영화 『토리노의 말 (2011)』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토리노의 말』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속수무책으로 혼란했다. 꽤 오래전 일인데도 그때 들었던 감정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가 시작하면 늙은 남자가 거센 바람을 맞으며 마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 오랫동안 나온다 (이때 이 영화의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어야 했다). 남자가 집에 도착하고 그의 아내인지 딸일지 모를 여자가 그를 맞아 함께 말을 마구간에 두고 집으로 들어간다. 여자는 남자가 외출복을 벗는 걸 돕는다. 남자의 몸이 성치 않아 거동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사 하나 없이 그 장면이 길게 이어졌다. 별달리 사건이라고 할 것 없는 옷 갈아입는 장면을 그리도 집요하고 세세하게 묘사하다니. 이건 심상치 않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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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찬 6. 지금, 여기, 디스토피아금요예찬 2021. 10. 12. 08:00
금요알람 구독하기 📬 “좀 괜찮아지면 보자.”라고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WHO가 팬데믹을 선포했다. 그때 말했던 “좀 괜찮아지면”이 이렇게 기약 없이 길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혹시라도 모를 바이러스 노출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연일 반복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불필요한 외출이란 생존활동에 필수적인 활동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는데 이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족과 외식을 하고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포함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사람들은 온라인 세계로 눈을 돌렸다. 요원하게만 보였던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이 허탈할 정도로 빠르게 현실이 되고 온라인 쇼핑 시장도 이전보다 훨씬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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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찬 5. 잃어버린 재미를 찾아서금요예찬 2021. 10. 5. 12:00
금요알람 구독하기 📬 *스포일러 경고: 오징어 게임의 내용과 결말 일부를 담고 있습니다. 창문 밖으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린다.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겨울이 아니면 창문을 늘 열어 두는데 우리 집은 거실 창이 아파트 놀이터 쪽으로 나 있어 언제나 아이 소리가 난다. 목소리가 커지면 자신의 주장도 더욱 커진다고 믿는지 아이들은 목청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그때마다 나는 천적을 만나면 몸을 잔뜩 부풀려 자신을 보호하는 복어나 목도리 도마뱀이 떠올라 몰래 웃는다. 공사장에서 나는 소음은 조금만 들어도 무척 괴로운 반면 아이들이 노는 소리는 하루 종일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아 신기하다. 즐거움으로 가득한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도 밝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낮 내내, 때로는 해가 진 저녁까지 쉴 새 없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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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찬 4. 커리 향기금요예찬 2021. 9. 28. 12:00
금요알람 구독하기 📬 인도 출신 영화감독 리테쉬 바트라의 영화 “런치 박스(2013)”는 아침마다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일라(님랏 카우르 분)의 분주한 주방을 그린다. 도시락의 주메뉴는 커리로 일라가 요리를 하면 영화 내내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윗집에 사는 것으로 추정만 되는 그의 이모가 음식 냄새만 맡고 부족한 향신료가 무엇인지 척척 알아맞힌다. 이모는 필요한 재료를 바구니에 담아 창밖으로 줄을 내려 일라에게 전달하며 자신의 비법 레시피라면 남편이 타지마할을 지어 줄거라 호언장담하는데 거기에 일라는 타지마할은 무덤이라며 맞받아 친다. 하지만 나는 무덤일지언정 타지마할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커리 레시피와 그 레시피로 만든 커리의 맛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중학생 때 다니던 학원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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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찬 3. 페드로의 붉은 주방금요예찬 2021. 9. 21. 12:00
금요알람 구독하기 📬 몇 년 전 이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집수리를 할 때였다. 전 주인은 거의 내 나이와 맞먹는 아파트에 입주 때부터 살았다고 했다. 아파트가 처음 지어질 당시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은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흔치 않았다. 다시 말해 집의 거의 모든 부분을 손보아야 했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에서 인테리어에 사치를 부리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폴딩 도어와 헤링본 마루는 그 첫 자음을 발화함과 동시에 산화하여 공중으로 사라졌고 편리한 기능과 탄탄한 마감을 자랑으로 하는 실용적인 제품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런저런 타협 끝에 두꺼운 샘플북에서 벽지와 바닥 마감재를 속성으로 고른 후 마지막으로 주방과 현관, 욕실에 사용할 타일을 선택하기 위해 인테리어 사장님의 차를 타고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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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예찬 2. 달려라, 좀비금요예찬 2021. 9. 14. 12:00
금요알람 구독하기 📬 달리는 좀비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은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2002)”가 아닐까 싶다. 강렬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고 멀리서 보이던 좀비 그림자가 순식간에 달리는 좀비 떼로 변해 주인공에게 달려드는 장면은 보는 이를 공포로 옥죄었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로 거의 모든 좀비는 단거리 육상 선수 뺨치는 실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일이 갑자기 몰아치고 난 후 완전히 에너지가 방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널브러져 있을 때 “좀비 같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어눌한 움직임은 그전까지 좀비를 정의하는 여러 특성 중 하나였다. 어쩌다 다시 움직이게 된, 생명체라 부르기는 뭣한 이 존재는 굳어버린 관절 때문에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그런데 달리는 좀비라니. 여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