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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알람 61. 남자의 자리금요알람 2022. 10. 14. 08:00
#로건 #그랜 토리노 #레옹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평안한 한 주 보내셨나요?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졌습니다. 아직 단풍도 들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저는 두툼한 가디건을 꺼내 입었습니다. 포근한 외투 한 장이 제법 큰 위로가 되었어요. 누가 꼭 저를 지켜주는 듯 말이지요.
이번 주 소개드릴 영화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여리고 어린 이를 지키고 싶었던 남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로건 (2017)
영화 『로건』의 오프닝 시퀀스는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늙고 쇠약한 울버린이라니. 예전이면 한 번에 쓸어버리고도 남았을 상대를 두고 로건(휴 잭맨)은 미처 다 뽑혀 나오지 못한 클로와 절뚝거리는 다리로 고투합니다. 로건이 상대의 공격에 맞아 몸에 상처를 입을 때마다 제 마음도 함께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엑스맨 시리즈나 울버린의 엄청난 팬이 아닌데도 이럴진대 팬들은 오죽했을까요.
길지 않은 오프닝을 보면서 왜 제목이 "울버린"이 아니라 "로건"인지 처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강한 히어로 울버린은 온데간데없고 보통의 인간처럼 늙고 쇠잔해가는 로건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뒤이어 등장하는 찰스 자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늙고 병들어 자신의 능력도 제어할 수 없는 뮤턴트. 로건은 그런 찰스를 돌보며 리무진 기사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잊힐 줄 알았는데 로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로건과 같은 클로를 가진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 뮤턴트가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당혹스러움도 잠시, 정체불명의 집단이 거침없이 그들을 추격해 오고 그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외면할 것인가, 이 아이를 보호할 것인가.
감독 : 제임스 맨골드
러닝타임 : 2시간 17분
Stream on Disney+그랜 토리노 (2008)
영화 『로건』을 보는 내내 저는 이 영화를 떠올렸습니다. 로건과 지금 소개드릴 영화의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무척이나 닮아 있었거든요. 두 남자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는 그저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늙어가던 중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세상 밖으로 다시 한번 나오게 됩니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여린 존재를 위해서 말이죠.
로건에게 그 존재가 로라였다면 월트에게는 타오와 타오네 가족이 그런 존재입니다. 은퇴 후 아내마저 먼저 떠나보내고 외롭게 지내던 월트에게 타오네 가족은 자신이 예전에 알고 지냈던 이웃의 자리를 차지한 못마땅한 이민자 중 하나였죠. 하지만 월트의 72년 산 자동차 '그랜 토리노'를 계기로 그들의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타오가 갱단의 협박으로 를 그랜 토리노를 훔치게 되었는데 이를 월트가 물리쳐 주었거든요. 얼떨결에 타오네 가족의 영웅이 된 월트. 그렇게 조금씩 편견과 혐오로 얼어붙었던 마음을 열게 됩니다.꼬장꼬장한 할아버지와 어린 소년의 우정이라는 어쩌면 흔해 보이는 서사에 미국의 인종 문제, 이민자 갈등 같은 묵직한 주제가 엮이면서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월트가 내리는 선택도 말이지요.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러닝타임 : 1시간 56분
Stream on Watcha & Tiving
레옹 (1994)워낙 유명한 영화라 오히려 소개하기가 참 어렵네요. 제가 무슨 말을 보태든 사족같이 느껴집니다. 검정 선글라스와 헐렁한 코트, 털모자를 쓴 레옹(장 르노)과 똑단발에 초커 목걸이, 항공 점퍼를 입은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의 이미지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엽서나 티셔츠, 포스터 등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지요. 아이유와 박명수가 함께 부른 동명의 노래도 있습니다.
킬러인 레옹과 복수를 위해 킬러가 되고자 하는 소녀 마틸다의 관계가 영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부패한 마약 경찰 스탠스(게리 올드만)에 맞서 복수를 단행하려는 마틸다와 그녀를 지키고자 애쓰는 레옹의 모습이 로건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다시 보면 마틸다와 레옹의 관계를 마치 연인처럼 묘사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시 보아도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데뷔작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했고 게리 올드만의 악역 연기는 어마어마했으며 스팅의 노래 "Shape of my haert"는 심금을 울렸습니다.
감독 : 뤽 베송
러닝타임 : 1시간 50분
Stream on Watcha
덧붙이는 이야기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마지막으로 책 한 권을 소개하며 이번 뉴스레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책 『남자의 자리』는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를 회고하며 쓴 소설입니다. 앞서 소개한 영화들에서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여러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과 자식 사이에 결코 넘나들수 없는 간극을 새기는 선택일지라도요.
아니 에르노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어요. 덕분에 여러 서점의 차트에 오르고 있습니다. 내심 올해 노벨문학상은 아니 에르노가 받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그녀가 상을 받아서 무척 기쁘고 괜히 뿌듯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직 읽지 못한 아니 에르노의 다른 책도 하나씩 읽어보려 합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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