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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알람 32. 추운 나라에서 온 영화금요알람 2021. 12. 3. 08:00
#리바이어던 #램스 #윈터 슬립
다정한 구독자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찬바람이 매서워졌습니다. 12월이 되니 공기에 겨울 향이 가득하네요. 두툼한 패딩에 누에고치처럼 몸을 구겨 넣고 길을 나섭니다. 요즘은 밖에서 항상 마스크를 끼니까 눈만 밖으로 내놓게 되잖아요. 지금 내 눈을 시리게 하는 이 얼음 같은 바람의 고향이 시베리아일지 오호츠크해일지 알 수가 없네요.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겨울이 배경인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차가운 바람이 스크린을 뚫고 나와 거실을 얼려버릴 것만 같은, 멀리 추운 나라에서 온 영화들입니다.
리바이어던 (2014)
러시아로 먼저 떠나볼까요? 영화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전경을 비추며 시작하는데요, 수채화 그림처럼 아름다운 언덕에 덩그러니 홀로 집 한 채가 앉아 있어요. 그곳에는 콜랴(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 분)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낡은 집이지만 가족이 대대로 살아온 이 집을 콜랴는 무척 아낍니다.
문제는 시장이 개발을 위해 그의 집을 부수려 한다는 거예요. 시장은 막무가내로 콜랴의 집을 빼앗으려 압박하고 콜랴는 모스크바에 있는 변호사 친구를 불러 이 상황을 타계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고 러시아 정교회 주교의 개입과 아내와 아들의 감정의 굴곡이 겹쳐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입니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자신의 책 제목으로 쓰기도 했죠. 이기적인 인간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피하기 위해 강력한 통치자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홉스의 주장과 지금 러시아의 정치 상황이 겹쳐 보여 "리바이어던"이라는 영화 제목은 탁월하고도 뼈 있게 들립니다.
감독 :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러닝타임 : 2시간 20분
Stream on Watcha램스 (2015)
신비로운 오로라의 나라, 아이슬란드에서도 영화를 만듭니다. 아이슬란드 출신 음악가는 여럿 아는데 영화감독은 아무도 몰랐고 사실 아이슬란드에서 영화를 만들 거라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네요. 제가 이렇게 편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편협함으로는 어디 가서 서럽지 않을 두 형제 구미(시구르더 시거르존슨 분)와 키디(테오도르 줄리어슨)가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둘은 40년 째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지내고 있어요.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으면 종이에 써서 기르는 개에게 묶어 보냅니다. 메모를 매달고 별로 멀지도 않은 두 집을 뛰어 다니는 개를 보고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어요.
구미와 키디는 양을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마을에서 열린 우수 양 선발대회에서 키디가 우승을 하자 구미는 질투심에 몸둘바를 모르죠. 그런데, 마을에 양 전염병이 돌아 모든 양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자식과도 같은 양을 살리기 위해 둘은 40년의 침묵을 깨고 은밀한 작전을 펼치는데요, 형제는 긴 세월이 만든 간극을 무사히 극복하고 양들을 살릴 수 있을까요?
감독 : 그리무르 하코나르슨
러닝타임 : 1시간 33분
Stream on Watcha윈터 슬립 (2014)
터키를 추운 나라라 불러도 될지 애매하지만 일단 넘어갑시다. 왜냐면, 이 영화는 정말이지 엄청난 영화거든요. 인간의 기만과 위선, 잔인함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에서 그리는 터키는 춥고 황량한 겨울 그 자체입니다. 아마도 성수기에는 찾아오는 사람으로 무척이나 붐빌 관광지 카파도키아는 그저 코트 깃을 뚫고 불어오는 스잔한 바람과 사방을 덮은 건조한 눈만이 가득합니다. 아이딘(할룩 빌기너 분)은 그곳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는 부유한 지역 유지이자 작가이며 전직 배우로 스스로를 매우 도덕적이고 공명정대한 사람이라 여깁니다.
그의 동생 네즐라(드멧 앳백 분)와 아내 니할(멜리사 소젠 분)은 아이딘의 생각에 그리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동의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경멸하기까지 하죠. 동족 혐오에 가까운 세 사람의 아슬아슬한 기싸움은 세입자 아들이 던진 돌멩이가 아이딘의 차창을 박살내고 난 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영화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 2악장(D. 959)을 메인 테마로 사용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연주를 썼는데 "사색하는 피아니스트"라는 그의 별명과 영화가 무척이나 잘 어울려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새로 녹음한 음악 같았어요.
감독 : 누리 빌게 제일란
러닝타임 : 3시간 16분
Stream on Watcha
덧붙이는 이야기
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출판사 열린책들추운 나라 하면 러시아를 빼놓을 수가 없고 러시아 하면 또 소설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올해가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이를 기념해 출판사 열린책들은 도스토옙스키 컬렉션을 출시했습니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꼭 "장정"이라는 말을 써야 할 것 같은 생김새입니다. 알라딘에서 북펀드를 할 때 홀린 듯 살뻔하다가 이미 책장에 꽂혀 있는 문학동네 출판사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떠올라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 중 널리 알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네요.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이렇게 5개의 소설이 총 11권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표지 디자인과 맞춘 아크릴 책갈피가 정말 탐이 납니다.
원체 외출을 잘하지 않는데 날씨까지 추워지니 더더욱 집에만 있게 되네요. 조용히 조명을 낮추고 폭신한 담요를 몸에 두른 후 따뜻한 차와 함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볼 수 있어 겨울은 그럭저럭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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