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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알람 51. 믿음이란 이름의 광기금요알람 2022. 6. 3. 09:00
#미드소마 #사바하 #더위치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6월의 햇살이 따갑습니다. 낮에 밖에 나가면 눈이 부셔 앞을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작은 눈을 더 작게 뜨게 되어서 선글라스를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밝다 못해 하얗게 산화하는 듯한 풍경을 보면 하지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지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 이번 기회에 스릴러 공포 영화를 소개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단전에 단단히 힘을 주고, 출발해 봅시다.
미드소마 (2019)
미드소마(Midsommar)는 스웨덴어로 한여름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6월 중순에 열리는 하지 축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요. 고위도 지역일수록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어 잠시 찾아온 여름을 다 같이 즐기는 것이 하지 축제의 유래라고 합니다. 더구나 스웨덴은 북극권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하지 무렵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발생하기도 하죠. 여러 모로 축제를 열고 여름을 기념하는 일이 당연해 보입니다.
영화 『미드소마』는 스웨덴의 하지 축제를 배경으로 합니다. 대니(플로렌스 퓨)가 친구들과 스웨덴 호르가에서 열리는 하지 축제에 가서 겪는 일들이 영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물리적으로 어두운, 그러니까 깜깜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 신기한 공포 영화예요. 전체적인 영화의 이미지가 흰색입니다. 태양은 내내 지지 않고 하늘을 밝히고,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 마을을 배회하지요.
아리 에스터 감독이 데뷔작 『유전』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인 공포 영화입니다. 전작은 오컬트 영화의 분위기가 강했는데 『미드소마』는 원시 종교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듯 보여요. 룬 문자나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그림, 알 수 없는 종교 의식이 그런 느낌을 배가합니다.
왓챠에서는 감독판과 극장판 모두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감독판이 극장판보다 23분 더 길고요, 극장판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극장판도 러닝타임이 짧은 편은 아니라서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를 이전에 접한 적이 있다면 감독판을, 이번 영화가 처음이라면 감독판을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감독 : 아리 애스터
러닝타임 : 2시간 27분
Stream on Watch & Netflix사바하 (2019)
"그날 우리 집에 나와 같이 귀신이 태어났다"
쌍둥이 동생을 귀신이라 부르는 소녀와 소녀의 기이한 출생. 소녀네 가족이 이사 오고 난 후로 이유 없이 픽픽 쓰러지는 소. 원인 모를 흉조에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인 마을 사람들. 영화 제목 『사바하』가 스크린에 올라오기 전까지 영화는 이야기의 초석을 빠르게 스케치하며 순식간에 보는 이를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던져 넣습니다.
영화 『검은 사제들』로 한국형 엑소시즘 영화를 선보였던 장재현 감독이 이번에는 사이비 종교를 가져왔어요. 신흥 종교의 비리 문제를 추적하는 박웅재 목사(이정재)가 '사슴동산'이라는 새로운 종교 단체를 조사하던 중 단순 사이비 종교로 치부할 수 없는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이야기는 거침없이 달려 나갑니다.
장재현 감독은 오컬트 장르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요. 대충 오컬트적인 소재를 가져와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고 깊이 설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딱 맞게 재단해 냅니다. 전통적인 무속 신앙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회나 성당, 절 등 종교적인 소재를 마치 비빔밥 비비듯 능숙하게 버무려내고요. 그러다 지금 대한민국의 종교 단체가 가진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포 영화인데도 가끔 웃음이 터지는 코믹한 장면도 나와요. 장재현 감독의 다음 영화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감독 : 장재현
러닝타임 : 2시간 2분
Stream on Netflix더 위치 (2015)
영화 포스터에 있는 제목 표기가 독특해요. 알파벳 'W' 대신 'V'를 두 번 겹쳐 표기했습니다. 원제는 『The VVitch: A New-England Folktale』로, 1692년 벌어진 세일럼 마녀 재판을 모티브로 합니다. 17세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땅에서 일어난 마녀 재판을 한 가족의 이야기로 가져와 묘사했어요.
영화는 토마신(안야 테일러 조이)의 불안한 얼굴을 비추며 한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장면인가 했는데 조금 더 장면을 지켜보니 마을의 재판소 같아요. 토마신의 가족은 그곳에서 막 추방령을 받았습니다. 토마신의 아버지 윌리엄(랠프 아이네슨)은 자신만의 종교적인 신념이 뚜렷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 믿음이 마을에 불화를 가져온 것 같아요.
윌리엄은 온 가족을 데리고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나 들판에 터를 잡고 새 터전을 일구기 시작합니다. 첫째인 토마신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네 명의 동생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내죠. 기도도 빼먹지 않고요. 그러던 어느 날 기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순식간에요. 마녀의 짓일까요?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근대 영어를 쓰는데, 그래서 더 17세기의 분위기가 더 잘 살아납니다. 의상이나 소품도 당대의 모습을 재연하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썼어요. 공포 영화이지만 쓸데없이 과하거나 놀라게 하는 장면 없이 분위기 하나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입니다. 어린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돋보이네요.
감독 : 로버트 에거스
러닝타임 : 1시간 32분
Stream on Watcha
덧붙이는 이야기
Isle of wight - 영화 『더 위치』 클로징 음악
마지막으로 영화 『더 위치』의 클로징 음악을 가져왔습니다. "Isle of Wight"은 실제 영국 남부 해안에 있는 섬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와이트 섬"이라고 번역하는데요, "Wight"라는 단어가 옛 영어에서는 귀신이나 혼령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고 하네요. 노래 제목은 아마도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요.
의미심장한 제목과 다르게 음악은 깨끗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중세 기사들이 불렀던 노래 같은 느낌이 나요. 영화가 끝나고 이전의 격정적인 분위기와는 대비되는 차분한 멜로디를 들으며 진짜 마녀는 누구였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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